나는 지루한 영화를 좋아한다. 대사가 없고 화면이 잘 바뀌지 않고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영화를 선호한다. 그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저런 정경이야말로 우리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루하게 만들기 위해 감독이 겪었을 혹독한 갈등이 눈에 잡혀서. 재미없게 만들기도 참 어려울 것이다.
나는 또 프로야구 경기 보기를 즐긴다. 홈런이 팡팡 터지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좋지만 0의 행진이 이어지는 투수전이 더 구미에 맞는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 오래, 몇 개의 계절이 지나도록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 긴긴 날을 견디는 선수들의 그을린 얼굴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별히 응원하는 팀도 없으면서 여름이면 나는 자주 야구장을 찾는다. 야간 경기가 벌어지는 구장에서 휘황한 전광판을 쳐다보면 어쩐지 슬퍼지고 엄숙해진다.
견뎌낸다는 것, 나는 이제 삶을 견디듯 소설을 견딘다. 그러므로 나는 늘 미안하다. 내 집착 때문에 수없는 불편을 견뎌야 하는 가족에게, 그리고 어쩌다 내 소설을 읽을 당신에게, 부디 잘 견뎌주기를 나는 감히 바란다. 창 밖에는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다. 오늘 프로야구는 순연될 것이다. 서운하지만 이 또한 견뎌야 한다. 운이 좋으면 연속경기를 볼 수도 있을테니.
보잘것없는 글을 쓰기 위해 지새웠던 말을 생각한다. 내 소설이 '벼락같은' 것이 될 여지는 없을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마른땅을 적시는 촉촉한 이슬비 같은 것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던 그 간절한 바람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등줄기 서늘한 이 느낌은 내게서 영영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부끄러워하고 낙담하고 자주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만 그 서늘함을 붙들고 있는 한 내 소설 쓰기는 계속 되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나를 달랜다.
다시 창작집을 묶는다.
부끄럽고 또한 기쁘다.
어느 쪽이 더 큰지 차마 밝히기는 민망하다.
얼마 전 평론하는 후배가 이렇게 물었다.
어찌 그리 또박또박, 열심히 책을 내셨어요, 그래?
열심히, 또박또박…… 그 말은 칭찬으로도 비난으로도 들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열심인 척, 또박또박인 척, 하는 스타일이다.
이따금 이렇게 열심인 척, 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제발 좀 고만해라, 그러다 정말 병난다…… 남편이 사정을 할 때.
그럴 때…… 어찌 하는가……
나는 진지하게 생각한다.
열심히, 진짜, 제대로, 열심히 살아야지……
내게 아팠고 슬프고 고마웠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실려 있다. 그 일들을 함께 아파했을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나는 감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