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달려서 모래언덕 꼭대기에 오른다.
그러나 녀석은 이미 사라졌다.
괴롭힐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는데, 녀석은 순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왜 사람이고 너는 왜 늑대일까. 무엇이 이토록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알 수 없는 인연이지만, 지금 녀석과 나는 같은 시간에서 살고 있다.
이제 나는 집으로 간다.
여행이란 결국 돌아오는 과정에 불과하다.
더 머물고 싶지만 어차피 집과 가족을 품고 떠나온 길이었다. 돌아가면 또 이곳이 그리워 몸앓이를 할 터. 그러다 또 떠날 궁리를 하겠지.
우얼순 강가에 앉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과 인상적인 장면을 되새김질하다가 곧 그만둔다. 아무것도 잊지 않는 게 좋으니까 애써 기억하여 의미를 새길 필요도 없다.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던가.
이제 우리나라에서 늑대가 사라진 지 반세기가 되었다.
그 세월만큼 사람들이 생각하는 늑대에 대한 편견도 두터워졌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 때 느꼈을 공포와 미움의 강도는 옅어지지만, 습관처럼 배인 편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물음보다는 받아들임에 더 익숙한 까닭이다.
한 동물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과장과 왜곡이 난무한다. 때로는 신화처럼, 때로는 괴물처럼. 그 종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에서 늑대와 승냥이, 호랑이와 표범 같은 최상 포식자 종이 사라진 것은 비극이다. 그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 삶에 위기가 오거나 피폐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태계는 활력을 잃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가벼워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의 결핍일까.
어릴 때는 사자나 코끼리, 기린과 코뿔소처럼 크고 멋있는 동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 우리 나라에 한 번도 살지 않은 외국 동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우리 나라 야생동물을 공부하자고 마음먹었지요. 십 년 넘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러시아, 몽골, 인도 여러 나라를 발로 뛰면서 야생동물을 만나러 다녔어요. 야생 동물을 알아 갈수록 이 땅에서 소중한 야생동물들이 사라졌어요.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숲을 잘 지킨다면 사라진 야생동물들이 언젠가 꼭 돌아오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