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문득 눈을 뜨면 산중에 혼자 갇힌 것처럼 적막했다. 공포에 질린 나는 소리쳤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거기 누구 없나요? 아무도 없나요?
좌충우돌 어찌어찌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그 후, 묘하게도 생의 극점에 선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또 다른 나였다.
…….
위기를 딛고 숙연하게 안으로 깊은 삶의 꽃을 피우는 그들의 생을 내 그릇에 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을 통해 위안을 얻고 치유를 받으며 내적으로 고요하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에 품은 이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그들이 그립고, 내일도 여전히 그 환한 웃음이 그리울 것이다.
일산 호수마을 집필실에서
사람은 누구에게나 섬 하나가 있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여기 이 이야기는 그 섬 속에서 꺼낸 이야기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고, 누군가 알까 봐 두려운, 그래서 안으로 곪아버린 상처들.
그 비밀스러운 상처를 이젠 담담하게 꺼내 햇빛과 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다. 그것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에 대한 예의이며 응대일 것이다.
한(恨)이 많으면 죽을 때 힘들다고 했던가. 어쩌면 나는,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편안하게 맞기 위해, 혹은 평온해지기 위해 내 안의 비밀들을 털어놓는지도 모른다.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 한 귀퉁이를 살짝 건드려 울컥 화나게 만들거나, 콧등을 찡하게 하거나, 겨자처럼 톡 쏘거나 그랬으면… 참 좋겠다.
비밀스러운 나의 상처들아
그동안 버텨줘서 고맙다.
울진 오두막 집필실에서
소통의 꽃.
편지는 사람 사이를 잇는 고요하면서도 폭발적인 정서다.
청소년들은 황폐한 불모지에 버려진 한 톨 씨앗이다.
나는 두려움 없는 그들의 야성적 감성을 질투한다.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 폭발적인 에너지, 그들이야말로 생의 기대이며 또한 생기이다.
나는 거칠고 시한폭탄 같은 청소년들이 좋다.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은 어른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네 인생도 늘 청소년기처럼 거칠고 아슬아슬하다. 사람끼리 부대끼며 상처받고, 질시하며 위안 받는 것. 혹은 더디지만 아프게 성숙하는 것…….
그것이 사람살이다.
사람살이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흑백 사진처럼 담백하고 순순한 그 사람살이가 나는 늘 간절하게 그립다.
일산 호수마을 집필실에서
여린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잎에도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
…….
어느 날, 친구의 비보를 접했다. 우울증으로 멀리 가 버렸다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주고받던 친구여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3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목격했다.
퍽! 시멘트 바닥에 진홍색 피가 금세 검붉은 자줏빛으로 바닥에 좌악, 번졌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던 여자래. 수군거리는 틈새로 삐용삐용, 요란한 경보음을 달고 119 구급대가 달려왔다.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자살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생에 대한 의욕도, 신앙처럼 여기던 문학도 무의미했다. 알 수 없는 욕망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고층 베란다에서 낙하하고 싶은 욕구, 바다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싶은 끝없는 욕망…….
그 유혹은 구체적이고 매혹적이었다.
내 의식은 시나브로 꺼져갔다.
찌개냄비가 펄펄 끓어 넘쳐도, 수돗물이 바닥으로 철철 흘러 넘쳐도 일어 설 수도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그때, 예기치 않았던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뜻밖에도 그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길 위에서 얻은 자유, 치유,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소중함……그리고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
나는 ‘또 다른 아픈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아프지 않는 풀꽃은 없는 법이라고.
흔들림이 잦은 꽃이 더 향기롭다고.
일산 호수마을 집필실에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산 하나를 품고 산다. 산이 멍에가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그것은 주인의 마음에 달려있다. 나는 소설이라는 산을 짊어지고 압사 직전까지 꾸역꾸역 걸어왔다. 앞이 꽉 막힌 기괴한 절벽을 휘돌아 독사가 우글거리는 습한 골짜기, 그 산줄기를 더듬다보니 이제 겨우 산의 숨결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할 때 만물의 정기에 가까워지고 그것이 바로 궁극의 힘이라고 연금술사에서는 말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고도의 작업, 그 연금술, 그렇게 글을 빚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산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받을 것이다.
북해도의 쨍쨍한 겨울 햇살이 그립다.
한 잎 두 잎 흩어져 있던 꽃잎을 모았다.
한 묶음의 꽃다발이 되었다.
잡꽃이 될지 명꽃이 될지 나는 모른다.
내 손을 떠난 꽃은 이미 내 꽃이 아니다.
꽃의 운명에 맡긴다.
꽃묶음이 빛나도록 추천사를 써 주신
소설가 원종국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 전하고
창작지원금을 지원해 준 강원문화재단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 준
청어출판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월남으로 파병 당한 큰오빠를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곱게 차려입은 단아한 한복에 정갈하게 쪽을 찐 어머니는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제발 내 아들을 지켜 주소서…….
작은오빠들이 군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독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간절하게 기도하던 어머니의 머리 위로 달빛도 서러워 함께 울었고, 어머니의 들리지 않는 그 간절한 절규가 아직 어린 소녀의 가슴에 연처럼 걸려 있었다.
그 애절함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가 되고 보니 몇 천 배가 되었다.
나는 날마다 읊조렸다.
당신께 받을 내 복을 한 티끌도 남김없이 전부 바치오니 제발 내 아들을 지켜 주소서…….
이 글을 아들을 군대에 보낸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 땅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육해공군 군인들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