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썩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어는 진실을 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언필칭 언론이라고 불리는 언어의 폭군들은 언어의 칼을 멋대로 휘두른다. 그들이 섬기는 부패한 상전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여 계속 그들의 수하로서 안전한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그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자들을 언어라는 무기로 잔인하게 괴롭힌다. 독재자들이 총칼로 했던 행위를 언어를 가지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시는 무엇일까? 소위 언어(言)의 사원(寺)이라는 詩는 이 타락한 언어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시집은 통곡과 절망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거짓의 언어가 왕 노릇을 하고, 지식인의 완장을 찬 자들까지 거짓의 왕들의 눈에 들기 위해 아부하는 시대에,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오월의 피와 세월호의 물. 그것들은 아직도 현재시제의 비극이다. 모욕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시에 대한 미련한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타락한 언어의 시대에 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을 구하는
인간적 노력이 이룩해 낸 언어의 높은 언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위로 오르는 기슭,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언어를 통해 이룩한 높이의 지워 버릴 수 없는 상징. 그러므로 시는 “그 언덕”이 아니라, “‘그’ 언덕”,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태로서의 언덕이다. ‘개마고원’은 현실의 어느 장소가 아니라, 높이 들어 올려진, 우리가 지금은 갈 수 없는, 그러나 언젠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곳과 저곳의 시적인 상징적 기슭이다.
나의 시는 그 기슭을 향해 간다. 내 생애 안에 ‘그’ 언덕에 이를 수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하늘이 이 생 안에서 내게 허락한 한계 안에서 애쓰고 또 애쓸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확실한 맥을 낚아챘다. 그리고 더이상 남자들이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여자'의 간곡한 말을 듣는 것이 세계에 대한 배반이 아니며, 남자들을 내 삶으로부터 내어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가장 많이 여자가 됨으로써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견고하게 구축한 자아의 성을 부수지 않고도, 수많은 귀신들의 집인 자아를 건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랭보의 뒤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타자들이다.' 라고.
투르니에는 철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일상의 모든 사물들이 철학적 사유의 재료로 활용되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이 도서관에 있는 딱딱하고 고상하지만 재미없는 물건이 아니라, 보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무엇이 되게 만든다. 이것은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삶에 대해 정말 빼어난 통찰력을 갖기 전에는 이런 글을 쓰기 힘들다. 투르니에는 아주 느긋하고 가볍게, 그러나 충분히 진지하게 무거운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나날의 식탁으로 하강한 철학은 생생한 삶의 먹거리가 된다.
일견, 전통적 서정성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소월의 시와, 모더니스트의 시학을 견지해 왔던 제 시세계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수상 소식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그 사실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콘텍스트를 옮겨 놓고 생각해 보면, 소월은 당대의 어떤 시인보다도 모던한 시인이었으며, 시적으로도 긴장하고 있는 시인이었습니다. 더더욱, 소월이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말했다는 사실이, 줄기차게 여성의 이름으로 말해 왔던 저로 하여금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상을 큰 기쁨으로 받게 합니다.
나는 '유령의 노래'로 시 쓰기를 시작했다. 당시에 유령은 나에겐 말의 비극을 살아내는 존재였다. 혀에 재갈이 물린 채 살아야 했던, 정치적으로 억압당한 타자의 상징, 분명히 존재하지만, 제도가 존재한다고 인정해주지 않는 존재, 분명히 소리내어 열심히 말하지만, 세계가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 존재.
80년대의 폭압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시체의 말을 쓰는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 내면에서 윙윙 울리는 순결한 다른 말의 힘을 믿었다. 나는 그 말에 그대고 존재를 구축해왔다. 25년 동안 그렇게 시를 쓰면서 많이 외로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외로움이 내 밥이며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나는 열등감의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서투르지만, 내 말을 찾아 내 길로 걸어왔다. 길은 외길이었고, 돌아갈 길도 없었다.
"문학평론을 쓰지 마라, 다친다"라고 권고하는 동료도 있었다. 그 말은 아예 비평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터였다. 비평행위를 하되, 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었을 터이다. "다친다"라는 말은 에둘러 발설된 체제의 위협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성비평가는 남성들의 마음에 드는 비평행위만 해야 하는가? 왜 여성비평가는 남성들이 선택한 작가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가. "태초에 남성의 말이 있었느니라",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내가 여성의 입장에서 독립적인 목소리로 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왔던 만큼, 독자들은 두 권의 비평집에서 정작 여성작가들이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우선 나는 현재 발표되고 있는 여성소설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작품에 나타나있는 여성의식이 너무나 희박하다. 그리고 문학적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내가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여성시인들이다. 그 사이 여성시인들에 대한 평론을 주로 써왔기 때문에, <한국여성시인연구>라는 제목으로 따로 한 권의 책을 구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성작가들에 대한 비평이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서문 '밥풀때기와 우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