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전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치료사로서 활동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힘이 들고 도움이 필요 할 때 이 책은 나에게 항상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새로운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는 치료상황에서 치료사가 겪을 수 있는 두려움, 실수, 실망감, 후회 등 인간적 고뇌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저자의 서술방식이다.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심리치료사례에 관한 책들은 치료사의 입장에서 대상(내담자)을 일방적으로 기술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치료를 받게 된 상처받은 한 아이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치료사 자신의 내면의 기록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치료사 속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들은 치료과정에서 다시금 치료사의 의식세계로 올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유아기의 경험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벤을 치료하던 치료사 애니가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없듯이, 치료사 애니도 벤을 치료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치료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노력을 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의 내담자들이 치료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음악치료학을 공부하던 학생시절 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자신이 화를 내지 못할 때에는 내담자중 어떤 사람도 치료시간에 와서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지만 치료사가 교육분석치료 중에 화내는 감정을 다루자마자 내담자들이 치료시간에 앞다투어 화를 내더라는.
심리치료에서는 치료사의 그릇크기에 따라 내담자가 내놓고, 다루어지는 이슈들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내담자의 내용들이 흘러 넘쳐 치료사를 압도하지 않도록, 또 내담자가 치료사의 작은 그릇을 보고 그만큼의 문제만 제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역량의 크기를 점검해 보고, 키워나가는 데 이 책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상처를 알지 못할 때, 그리고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치료사, 선생님, 부모들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이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이 상처받았기에 내담자들의 상처에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치료사들에게, 또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상처 입은 선생님들과 부모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픔이 너무 힘겨워 거기에 굴복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아픔만이 남겠지만 그 것을 극복한 후에는 이전과는 다른 시각,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조마조마한 마음, 안타까움, 감동과 눈물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일년 여에 걸친 번역작업 동안 능력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힘들었지만 때때로 컴퓨터를 끄고 내 자신 속으로 눈을 돌려 나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애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작업의 어려움을 상쇄시킬 만한 충분한 즐거움을 주었다. 독자들도 그 내밀한 마음으로의 여행에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