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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김혜순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 (전갈자리)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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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나만의 미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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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이제 보니 우리는 작별의 공동체 2019년 3월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애벌레는 잠재적으로 나비이다. 애벌레 안에는 장차 나비가 되었을 때의 세포 하나하나의 무늬, 색깔, 냄새까지 다 들어 있다. 애벌레는 나비로 데포르마시옹하기 위해 존재한다. 단백질 덩어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애벌레의 내부 어딘가에는 날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내 시는 그 욕망을 시의 영감으로 삼는다. 아울러 그 욕망의 변용이 나의 시의 형식이다. 나의 이렇게 닫힌 몸 속에는 그 변용을 가능케 하는 어떤 공장이 있다. 보이진 않지만. 즉,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쉴새없이 아버지의 공장들을 무화시키려 가동하는 공장이 있다. 꿈의 공장, 혹은 꿈의 나라의 통치는 수사학으로 이루어진다. 그 나라에선 검은 쓰레기 봉투처럼 묶인 내 몸의 경계가 사라지고 없다. 영화가 현실이며, 간통이 하나의 관습이다. 그 나라에선 무대와 객석이 하나며, 유치장과 심문대가 하나다. 내 몸이 외부와 섞여 한없이 넓어진다. 애벌레가 꾸는 꿈의 디테일, 움직임, 말, 변용이 애벌레의 몸을 무한대로 감수 분열시킨다. 꿈이 애벌레의 현실을 강화하고, 왜곡시키며, 단조로운 순환 속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꿈이 애벌레 내부의, 혹은 외부의 모든 거울을 깨준다. 그러자 햇빛 속에 나비가 한 마리 날아간다. 꿈조차 사라지고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어딘가에 비밀의 출구가 있을 것이다. -김혜순, 「당신의 꿈속은 내 밤 속의 낮」 중에서

당신의 첫

몸 안팎의 노래에 한 세상 사로잡혀 살다가 그 나라로 가버린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치겠다고 하면 받을라나? 시마에 머리채가 걸려서 터널인지 갯벌인지 여기까지 왔다. 채석강에 가서 검은 뻘 같은 내 속을 생각했다.

모래 여자

이 세상에는 정말 누구의 발명품인지 궁금한, 지도에는 없는 '시의 나라'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시의 나라는 '없음'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당신과 나 사이, 내 책상과 내 몸 사이, 내 손톱과 내 손가락 사이, 낮과 밤 사이, 그 수많은 틈들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한없이 넓어서 작은 제 몸으로 채우기가 가없이 힘들고, 한없이 좁아서 커다란 제 몸을 구겨 넣기조차 힘든 나라입니다. ... 생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출몰하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흘리다 돌아가는 일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저 가을 하늘처럼 푸르디푸른 시 나라의 희박함에 들려 있기에 그럴 것입니다. - 수상 소감 '희박함에 들리다' 중에서

슬픔치약 거울크림

앞에 가는 말을 지우며 가는 뒤의 말을 지우며 가는 시를 지우며 가는 숨 2011년 가을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글과 그림들은 ‘고독존자 권태존자’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 카페에 약 8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그러나 엄밀히 8개월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7×7=49일간 연재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때2014년 4월 이후는 무척이나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도대체 영혼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연재하던 글의 제목을 후회하고, 글을 발설하는 자의 별명(쪼다)을 후회했습니다. 안산에 있는 제가 근무하는 학교(서울예술대학교)에 출근하기 위해 역에 내리면 역 앞에 늘 서 있는 버스에 플랜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엔 ‘상담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바람은 꿈 분석을 싫어한다, 바람은 집중 치료를 싫어한다’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미친 사람처럼 자꾸만 중얼거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난데없는 그런 중얼거림이 다시 연재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연재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제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에게도 혹시 글쓴이의 이름을 깨닫게 되더라도 이름을 밝히는 스포일러는 되지 말라고 경고했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연재되는 글 뒤에 붙는 댓글이 ‘나’라는 사람과 무관하게, 그곳에 쓰인 글만으로 읽혀지길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투명한 시에 이르고 싶었습니다. 이런 갈망이 나날이 깊어지니 유체이탈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내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 이렇게 몸을 이탈한 경험들 때문에 불안과 고독과 권태가 차례대로 엄습했습니다. 이런 악순환에 괴로워하다보면, 또다시 문득 첫 경험인 듯 무언가가 둥싯 떠올랐습니다. 부피는 있는데, 무게는 없는 그것이. 몸을 버린 냄새와 같은 그것이, 소리와 같은 그것이, 이미 유령이 된 그것이. 이런 반복으로 불안과 고독과 권태가 나의 시의 형이상학이 되었습니다. 신비 없는 우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몸을 버리고 떠올라 ‘나’를 내려다보는 그것을 시적 발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적 발생이라는 타자가 몸에서 불쑥 솟아오르면 나의 테두리 반경이 한없이 늘어나고, 나라는 개인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 속에서 ‘시산문’ 같은 어떤 관찰의 결과물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노숙자에 대하여 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차르트에 대하여 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시를 떠도는 저 개를 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쓰는 척했지만 저 아래 저렇게 낯선 바닥인 또다른 나를 쓰고 있었습니다. 글쓰는 나는 이미 써진 삶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시라고 하면 시가 화냅니다. 이것을 산문이라고 하면 산문이 화냅니다. 시는 이것보다 높이 올라가고, 산문은 이 글들보다 낮게 퍼집니다. 이것은 마이너스 시, 마이너스 산문입니다. 이것을 미시미산未詩未散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산문Poprose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에 미안하고 산문에 미안하니까. 이것들을 읊조리는 산문이라고, 중얼거리는 시라고 부를 순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로 쓸 수 있는 것과 산문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 두 장르에 다 걸쳐지는 사이의 장르를 발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나를 관찰하면 할수록 불안이 깊어지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권태와 고독이 의인화된 사람이 된 그 사람이 쓴 글입니다. 그 사람을 나라고 불러본 사람이 쓴 글입니다. 이 글들은 장르 명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존재하는 미지의 나라, 애록AEROK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자리, 생각만 해도 현기증나는 그 멀고먼 나라, 시의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쓴 글입니다. 시 같은 것도 있고, 산문시 같은 것도 있고 단상 같은 것도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김수영의 말, 산문을 쓸 때도 자신은 시인이라는 보들레르의 말 사이의 길항을 붙들고 쓴 글입니다. 쓰는 동안에 거룩함이라는 쾌락, 연민이라는 자학, 건전함이라는 기만에만은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민정과 윤정, 필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016년 3월

어느 별의 지옥

시들을 여기에 다시 풀어놓는다. 꼴뚜기 같은 내 시들아. 저기 저 어둔 고래를 먹어치우자. 부디. 1988년 봄 이 시집의 시들을 쓸 때 우리나라는 엄혹한 시대를 통과 중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가 더 그랬다. 창문은 열었지만, 맑은 날은 하루도 없는 나날이었다. 여기가 ‘어느 별의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두 군데 출판사를 연이어 다니고 있었는데, 검열이 있었고, 금서가 있었다. 시를 써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청탁에는 응했다. 한 번에 쓰윽 써버린 다음 수정하지 않았다. 학대받는 새끼 짐승처럼 검열에 걸릴 짓은 미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로 찾아오는 시들을 일필휘지로 버려버렸다. 출판사 직원이었던 나는 책의 3교 다음 OK를 놓고, 가제본을 끝낸 책을 들고 시청의 군인들에게 검열받으러 갔다. 어느 땐 그들이 지운 잉크로 본문이 다 지워진 책이 숯 덩어리가 된 적도 있었다. 저자를 찾아가 한없이 울었다. 후에 그의 책은 대사 없는 무언극으로 공연되었고, 그 저자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노동운동을 선구적으로 시작했던 여성의 일대기를 번역서로 출간한 적도 있었는데, 그 책의 역자인 그녀의 거처나 전화번호를 대라면서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그 시들을 몇 년 묵혔다가 이 시집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쓴 일곱번째 시는 걸릴 것 같아 애당초 넣지 않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엔 여섯 편만 들어 있다. 점점 현실을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묘사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실재 묘사를 두려워했는지는 나중에 여성적 글쓰기나 여성시의 화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미루어 분석하게 되었지만, 작고, 재갈 물려, 웅크린 강아지 같은 목소리만 내었다. 어느 곳이든 내 영토나 내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일상이 증발된 채 공중에 떠 있거나 처박혀 있었다. 다만 그 작은 방들, 끝없이 우리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두려움을 봉합할 가짜 소설이 강요되던 그 방들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나만은 다시 기억나는 장소들이 이 시집에 들어 있다. 그 시절 이후 다시는 이 시들을 읽지 않다가 재발간에 즈음해 다시 읽어보니 몇십 년 지난 그 장소들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놀랐다. 이 시집은 제일 먼저 청하출판사, 그다음엔 문학동네, 다시 문학과지성사로 옮겨 출간되게 되었다. 청하에서 이 시집이 나오자 김현 선생님이 불러서 말씀하셨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고 싶었다. 이제 결국 선생님이 계셨던 장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중에 편찮으신 가운데 선생님이 글을 쓰시고 서랍에 넣어두셨다고 김치수 선생님께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것도 돌아가신 다음에 듣게 되었다. 시집을 다시 내고 싶지 않아서, 이 제의를 몇 년을 미뤘었다. 이 부끄러운 원고를 읽으신 선생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생각났다. 2017년 봄

죽음의 자서전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죽음이 정면에, 뒤통수에, 머릿속에 있었다. 림보에 사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가 갔다. 뙤약볕 아래 지구의 여름살이 곤충들처럼 고통스러웠다. 고통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죽음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저 나무는 나를 모른다. 저 돌은 나를 모른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나는 죽기 전에 죽고 싶었다. 잠이 들지 않아도 죽음의 세계를 떠도는 몸이 느껴졌다. 전철에서 어지러워하다가 승강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라 나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군가. 가련한 여자. 고독한 여자. 그 경험 다음에 흐느적흐느적 죽음 다음의 시간들을 적었다. 시간 속에 흐느끼는 리듬들을 옮겨 적었다. 죽음 다음의 시간엔 그 누구도 이름이 없었다. 칠칠은 사십구라고 무심하게 외워지는 것처럼,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연구년 동안에 이 시들 중 대부분을 적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죽어버린 옛 여자들처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먼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 안의 죽음으로 이곳의 죽음이 타격되기를 바랐다. 이제 죽음을 적었으니, 다시 죽음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 다 모래야. 2022년 4월 김혜순

피어라 돼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가 아무것도 소리치지 않기가 시의 체면을 세워주기가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다 2016년 3월

한 잔의 붉은 거울

얼음을 담요에 싸안고 / 폭염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 그렇게 이 시간들을 떨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 한 줄기 차디찬 핏물이 / 신발을 적실 것처럼.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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