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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홍기돈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대한민국 제주도

직업: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최근작
2024년 8월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

집중적으로 논문을 써 내려간 것은 최근 삼 년 동안의 일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써 낸 뒤라 다소 여유로운 환경에 놓이기도 했지만, 최근 연구 경향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들게 된 까닭이다. 유럽에서 발원한 단단한 근대를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다른 근대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연구들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제국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를 거울의 대칭 관계로 파악하여 둘 다 비판하고 나서는 태도는 결국 식민주의로 귀결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실상의 왜곡과 침소봉대의 독법에 의해 만들어진 무책임한 성과는 엄밀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 대략 이러한 물음들이 사명감으로 벼려졌던 것이다.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

어느덧 오십대 중반에 이르렀으나 나에게도 아직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피터 한트케의 시구에 등장하는 아이마냥, 그 시절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온통 의문덩어리였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 있고/ 저기에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중략)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조각은 아닐까?”(「아이의 노래」 일부) 그러한 궁금증에 나름의 해답을 마련하면서 살다보니 인문학자가 되었고, 내 영혼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제주 섬에 관한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나는 누구인가’ 물을 때나 ‘어떻게 살 것인가’ 가늠할 때, 내가 제주 출신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상수常數였다. 학교 근처 우당도서관 향토사자료실을 들락거렸던 고등학생 때도 그러했고, 대학교에 진학하느라 제주 섬을 떠나온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굴욕감을 동반한 서울말 사용에 길들면서, 거부감을 안은 채 ‘저들’의 기준에 따라 ‘나’의 생활 방식을 바꾸면서, 제주에 대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제주 공부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겠노라는 발버둥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에 국가와 제주 공동체의 관계를 담고자 했다. 토머스 홉스는 자연에서의 인간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인다고 전제하고 ‘리바이어던’, 즉 강력한 국가를 해결 방안으로 제안하였다. 그렇지만 제주 공동체의 역사는 홉스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제주 공동체는 척박한 자연 조건에 유폐된 인간이 어떻게 상호부조의 질서와 문화를 일구는지 입증하는 사례다. 난폭한 야수마냥 제주 공동체를 끊임없이 할퀴고 물어뜯은 것이 리바이어던이었다. 그 점에서는 전근대 고려ㆍ조선, 근대이행기 대한제국ㆍ일제, 근대 미군정ㆍ대한민국 어떠한 중앙권력도 다를 바 없었다. 제주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를 깊게 할수록 원자료原資料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원자료가 체계적으로 번역ㆍ출간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가져왔던 제주 문화의 특징에 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하였고, 인문학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개별적인 특징들을 통일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Ⅰ부 ‘제주 문화의 기원과 형성, 변동’에 묶은 글들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 출간에 앞서 제주 관련 중요한 사료들을 정리ㆍ번역해 주신 역자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연구자, 비평가가 작품을 분석ㆍ평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증과 기준이 필요한데, 나의 경우 제주 섬 소재 문학작품을 파악하는 데에는 Ⅰ부 내용이 근거가 된다. Ⅱ부 ‘제주 공동체주의와 4·3문학’에 묶은 글들은 그렇게 씌었다. 분석ㆍ평가라고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앞섰던 것은 경의敬意였다. 해당 작가들이 나서서 만든 길을 내가 걷고 있으며, 내가 가지게 된 고민을 그분들이 먼저 펼쳤다는 데서 생겨난 자연스런 심정이었다. 기실 작품 분석의 어떤 대목에서는 작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겹쳐 있기도 할 터이다. 그렇지만 주관에 함몰되지 말아야 할 연구자로서의 위치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

한쪽에 해가 비치면 반대편에는 그늘이 진다. 양과 음이다. 자연의 운행에서 양과 음은 한순간도 정체되는 일 없이 항상 변화한다. 나의 심장 또한 날숨과 들숨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쉴 새 없이 펄떡인다. 펄떡이는 심장의 확장/수축 운동과 더불어 내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 나만 그러할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문자를 모르는 당신의 반려동물도, 생존 근거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북극의 곰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탐구는 존재의 운동성에 입각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들을 끌어안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과 맞서야 하는 인문학의 사명은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에, 특정한 속성이나 명제로 집약되는 순간부터 그로부터의 탈주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운동으로서의 인문학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배제되고 억압받는 인간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에 묶은 산문들은 세계의 전회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자리에서 쓰였다. 인문학 가운데서도 문학 범주를 통한 접근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하였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이력과 관련이 있겠다. 그래서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라고 제목을 붙였다. 인문학의 운동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기실 이 책에서 변혁보다 더욱 부각되는 것은 정체된 채 썩어 있는 한국 사회의 민낯일 터이다. 가령 일본 극우파의 자금 지원을 받는 한국 우파에 대한 추궁은 2000년대 중반에나 2020년에나 동일하게 가능하다.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그들의 연이은 죽음을 방치하는 현실은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적 좀비들 또한 여전히 백주대로를 활보하고 있다. 이 책의 한편에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 놓여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와 맞서는 인문학의 자리를 굵직하게 표시해두었다. 일찍이 그람시는 당대의 정체된 이탈리아를 두고 다음과 같이 토로한 바 있다. “낡은 것은 멸해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발생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써 낙관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그람시에 기대어 말하건대, 위기의식에 한 발 걸치되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현실과 길항해 나아갈 의지는 인문학 가운데서 벼리어나갔다. 현실 가운데서 인문학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나의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넘겨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 책머리에

민족의식의 사상사와 한국 근대문학

일찍이 단재(丹齋)는 조선인의 노예근성을 다음과 같이 질타하였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 백여 년 흘렀어도 단재의 그와 같은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한다고만 하면 어떠한 사상이든 아랑곳 않고 아무런 검증 없이 두 손 들고 버선발로 뛰쳐나가 웰컴을 외쳐대는 ‘기지촌 지식인’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고는 그러한 현실에 맞서고자 하는 의도를 바탕으로 쓰였다. - 머리말

인공낙원의 뒷골목

이 책은 여러 가지 물음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왜 사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은 왜 필요한가, 문학은 왜 하는 것인가, 문학을 둘러싼 사회는 어떤 꼴을 하고 있는가. 나는 책에서 답을 찾지 않았다. 삶의 한복판에서 나 자신을 걸고 묻고 또 답했다. 여러 작가들과 평론가들은 대화의 상대였다. 논쟁이든 공감이든 연민이든 모두 다 대화였다. 대화 속에서, 그 시간 속에서, 나와 너는, 우리 모두는 그윽하게 깊어질 수 있다.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깊이를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라며 부박한 욕망의 뒷모습을 찾아 '인공낙원의 뒷골목'을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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