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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우디 앨런 (Woody Allen)

본명:Allan Stewart Konigsberg

성별:남성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35년, 뉴욕 (사수자리)

직업:배우, 영화감독

가족:아내 순이 프레빈(배우)

기타:뉴욕 대학, 뉴욕 시립대학 퇴학

최근작
2023년 2월 <[큰글자책]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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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대학과 뉴욕 시립대학을 다녔으나 두 군데에서 모두 퇴학당했다. (뉴욕대학의 필름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가 '영화 제작'과목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했다)

고등학생 시절인 1950년부터 짧은 글을 써서 얼 윌슨이나 여러 신문사에 투고했는데, 윌슨의 소개로 쇼단의 짤막한 보도 자료를 쓰는 자리를 얻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드 씨저의 TV쇼에 스텝으로 참가했는데, 글을 쓰는 일은 1961년 '개리 무어쇼'를 마지막으로 끝냈다. 그후 스탠드 업 개그맨으로 나섰는데, 1964년에 프로듀서인 찰스 펠드먼이 나이트클럽에서 그를 보고 을 쓰도록 고용했다. 1966년엔 그의 첫번째 브로드웨이 무대인 <물을 마시지 마라>가 대성공을 킵었?1969년에는 험프리 보가트의 <카사블랑카>를 패로디한 <보기, 나도 남자다(Play It Again, Sam)>가 또 다시 대성공을 거두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1966년에 일본 스파이 영화를 재편집해 자신이 직접 쓴 영어대사로 더빙한 영화 <타이거 릴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였지만, 실질적인 데뷔작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강도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돈을 갖고 튀어라>(1969)였다. 주연과 각본, 감독을 맡았던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우디 알렌은 이후 유대계 뉴요커가 산 마르코스로 가서 난데없이 대통령이 된다는 정치와 매스컴에 대한 풍자극 <바나나 공화국>(1971),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1972), SF 코미디로 초현실적인 개그가 돋보이는 <슬리퍼>(1973) 등을 만들며 승승장구한다.

77년작인 <애니홀>은 코미디 영화감독 우디 알렌의 재능이 만개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알렌의 영화는 고급스러워지는데, 그는 앙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장 르누아르 등 유럽의 거장들이 시도했던 영화언어를 코미디에 결합한다. 베르히만의 비관주의가 짙게 배인 <인테리어>(1978), 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이 그러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알렌은 코미디가 전문인 감독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뉴욕에 대한 자전적인 송시라 할 수 있는 흑백영화 <맨하탄>(1979), 가상인물인 유대인 젤리그에 관한 가짜 다큐멘터리와 뉴스릴 필름을 뒤섞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감쪽같이 지워버림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효시로 기록된 <젤리그> (1983) 등이 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알렌은 80년대와 같은 방식으로 영화 연출작업을 계속한다. 적은 예산으로 자신을 변함없이 지켜봐주는 컬트 관객들을 위한 시류와 관계없는 영화를 만들어간 것이다. 90년대의 대표작으로는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 그의 최초의 뮤지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등이 있다.

영원한 뉴요커 답게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의 특색이기도 하다. 1992년 미아 패로가 저명한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살 때, 입양했던 순이의 나체 사진을 자신의 집 벽난로에 뒀다가 발각됐다. 이 때부터 시작된 미아 패로와의 갈등으로 그는 항상 사생활이 노출된 채 살아야 했으며, 순이와는 우여곡절 끝에 97년 12월 결혼했다. 나이 차이가 무려 35년. 두 사람은 뉴욕에 거주하며 1999년 첫 딸 베쳇을, 2000년 둘째딸 맨지 티오를 입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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