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키우며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모두 시한부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어요. 흘러가 잊히기 전에 얼른 붙잡아 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일화들이 모여 동화 시리즈 ‘은지와 호찬이’가 되었습니다.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고, 나와 딸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할머니의 기억을 담은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2022)를 썼습니다.
소설가 심윤경이 돌아왔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기를 마치고. 다시 독자들을 찾은 그가 준비한 것은 뜻밖에도 세 권의 동화책이다.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 엉뚱하고 언제나 제멋대로지만, 그 통통 튀는 매력 앞에 어른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사랑...
나의 이십 대 후반은 겁 없이 전공을 포기하고 글쓰기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하면서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인생 최대급 과업들도 해결하느라 스스로 자각할 수 없을 만큼 정신없고 뒤죽박죽이었던 시기였는데, 그 무렵의 아주 또렷한 기억 하나는 소설을 쓰고 있던 순간의 행복이었다. 퇴근 후 또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PC 앞에 앉는 그 짧은 순간, 텅 빈 모니터와 맥주 한 캔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아까 그 대사는 정말 짜릿했어”라든가 “이러다 정말 소설이 되겠어” 또는 “와, 나 정말로 소설가가 된 것 같아” 싶은 기분들. 글을 쓰면서 그렇게 대책 없이 행복한 나 자신이라니, 이젠 거의 흉내 낼 수도 없을 만큼 아득한 기억이다. 등단 후 20년이 흘렀고 많은 일을 겪으며 어느덧 중견 소설가가 된 나는 그때처럼 해맑게 웃으며 노트북 앞에 앉지 못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나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 같은 존재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내 안에 남아 힘이 되어주고, ‘이것이 바로 나’라는 의식의 근원이 되어준다.
지금도 힘들고 용기를 잃을 때면 동구를 생각한다. 강건하고 정직한 트럭운전사가 되어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을 그 중년 남자를 생각하면 어쩐지 나에게도 그를 닮은 모습이 조금쯤은 있을 것 같고, 대책 없이 행복하게 작가라는 길을 걷고자 하던 오래전의 내가 생각나며, 이 세상의 평범해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빛나는 작은 새의 황금빛 깃털 하나쯤은 숨어 있다는 오랜 존경심으로 이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받은 오랜 사랑과 격려가 오늘까지 형편없이 휘청거리는 나를 굳세게 받쳐주었다. 초조했던 젊은 나를 소설가의 길로 초청해준 한겨레출판사와 오늘까지 이 소설을 사랑해준 많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