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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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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맹인에 대한 편지>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부교수이다. 디드로의 <미의 기원과 본성>, <백과사전>,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자연의 해석에 대한 단상>, 라 메트리의 <인간기계론/인간식물론>, 장 스타로뱅스키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자유의 발명 1700~1789/1789 이성의 상징>, 사드의 <규방철학>,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 장 자크 루소의 <정치경제론ㆍ사회계약론 초고>, 필립 피넬의 <정신이상 혹은 조광증의 의학철학 논고> 등을 번역했고, 저서로 <자연의 위반에서 자연의 유희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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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규방철학> - 2018년 12월  더보기

≪규방철학≫의 사드가 옛 귀족정치를 옹호하고 그 체제로 복귀하고자 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그는 민중의 정치를 믿지 않았던 만큼이나 귀족정치와 왕정의 복귀를 열망하지 않았다. 물론 귀족들의 ‘좋았던 시절’은 분명 사드에게 여전히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다. 그가 ≪규방철학≫의 주인공들을 ‘규방’에 모아두는 것이 정확히 그 이유이다. 18세기에 돈 많고 권세 높은 유한계급들이 누렸던 전원의 프티트 메종과 그곳의 상징적인 관능과 타락의 공간인 규방은 그들의 노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일한 곳이다. 그들은 더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행동에 나설 능력도 힘도 없는 이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의 행사는 ‘고작’ 딸을 찾으러 온 독신자篤信者를 무참히 유린하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잔인해 보이는가? 그의 상상력이 사악해 보이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사드가 그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위험한 사상과 사악한 심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무기력이다. 그리고 그런 무기력은 바로 사드 자신의 것이다. 달아오른 머리로 폭력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외국으로 도망가 혁명을 포위하도록 사주하는 형편없는 과거의 특권계층에게 보내는 조롱이자 야유이다. 폭력의 경험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취할 길은 두 가지뿐이다. 도피가 아니면 투항이다. 이 시대 많은 귀족들은 프랑스를 떠나 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후, 총재정부 시대에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모리스 르베의 생각을 따라, 혁명 이후 재산도 가족도 귀족의 칭호도 모두 잃은 사드가 살아남기 위해 귀족 성姓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출신을 감추고 피크 지부에서 정치활동을 한다면 결국 사드는 프랑스혁명에 투항한 셈이다. 그렇지만 사드의 정치행위와 입장이 혁명에 대한 그의 미온적인 태도를 감추는 위선이었다고 그를 단죄하지 말자. 사드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식인종들’ 사이로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잠시나마 ‘향연’을 즐겼다. 그러나 혁명기에 사드가 취한 입장을 단순히 기회주의로만 볼 수 없다. 오히려 프랑스혁명의 다양한 이념과 전망을 단 한 가지로 환원하고자 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이후 프랑스혁명의 경향적인 해석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혁명은 처음부터 단일한 이념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모든 특권계급이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3계급 역시 단일한 이념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왕국에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권의 폐지와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라파예트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사드 역시 당대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의 하나를 지지(하고 주저)했으며,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던 당파의 이해를 위해 정치에 뛰어든 프랑스혁명의 여러 인물 중 하나였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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