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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협자를 언화(彦和)라고 하며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쥐현(?縣)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그의 본적이며 그가 실제로 살았던 곳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전커우현(鎭口縣)이다. 그의 선조가 북방 민족의 난을 피해 강남으로 이주해 이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조부인 유영진(劉靈眞)은 송(宋)나라의 사공(司空: 국무장관)을 지낸 유수지(劉秀之)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 유상(劉尙)은 남방에서 외지인을 관장하는 월기교위(越騎校尉)라는 관직을 지냈지만, 비교적 일찍 죽은 듯하다. 그의 모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마도 유협도 일찍 고아가 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유협은 소년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했는데, 물론 유학인 공자학파의 학문이었다. 그의 일족은 급속히 몰락해 가난 때문에 그는 결혼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남경 교외에 있는 정림사(定林寺)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당시 정림사에는 명승으로 알려진 승우(僧祐)가 거처하고 있었다. 이후 정림사에서 폭넓게 불경의 경론을 공부한 끝에, 제(齊)나라 영명 연간(永明年間: 483∼493), 정림사에 소장되어 있던 불경 서적의 분류 정리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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