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가 그토록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내가 찾은 그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차가운 겨울이었다. 가뜩이나 무거웠던 마음이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의 모습은 평안했고, 마음은 따뜻했다. 어찌 힘들었던 지난날을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울 수 있겠냐 만은 그분들은 모진 세월을 잊었다기 보다는,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이해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은 이분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상상을 뛰어넘는 분이셨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은, 피조물인 이들과 늘 함께하고 그들을 위로하셨다. 소록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믿음 앞에서 우리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소록도의 모습에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지금은 600명 남짓 어른들이 계신다. 어제는 뒷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오늘은 앞집에서, 그리고 내일이면 또 누구의 차례가 될지 모르는 초고령의 어른들이 사신다. 이렇게 얼마의 세월이 흐르면 소록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저 아름다운 섬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을 수 있는 시간. 단순히 일본에게 이들의 아픈 상처를 책임전가 하기에는 너무 치졸하고 비겁하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이 땅의 한센병력자들은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들 마음의 시린 벽을 허물고 우리로 인정할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이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