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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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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캐리어를 낚다>

이정님

· 충남 논산 출생
· 공주사범,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미국 Yuin University 명예 교육학 박사
· 월간 《시조생활》, 월간 《아동문학》으로 등단
· 초등학교 교장
· 평생교육연구학회 P.C.A. 이사장
· 국제문화예술협회 운영이사, 한국교단문학 이사
· Frank E. C. Williams 선생기념사업회 자문위원
· 한국공간시인협회 회장, 동방문학협회 회장, 한겨레문학협회 회장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편집위원, 월간 아동문학 편집위원, 문학서울 편집위원
· 국제펜, 한국문인협회, 여성문학협회, 시인협회 회원
·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이사, 전국공무원문인협회 이사, 상록수문학회 이사
· 서울교원문학회 지도위원, 한겨레문학회 고문, 문학방송 운영위원
· 아동문학세상 중앙위원, 인천복지방송 문화국장, 실버넷뉴스 기자

수상
대한민국 황조근정 훈장(대통령), 모범공무원 훈장(국무총리), 백목련상
서울정도 600년 자랑스런 시민으로 ‘서울 1000년 타임갭슐’에 수록(1994)
자랑스런 시민상(미풍양습 부문), 전국초등학교 교육연구상, 독서교육 연구상
통일작품 문학상(정부 주관), 한국아동문화 대상, 한정동 아동문학상
한국계관 시인 평화대상, 세계계관 시인상, 허난설헌 문학상, 황희 문학상
공무원 문학상, 교단 문학상, 문학공간상, 대한민국 시인상, 허균 문학상
옥로 문학상, 프로포스트 시인상, 결레문단 공로폐, 공무원관리공단 공로폐
한국보이스카웃연맹 봉사폐, 중국연변문학 감사폐
항일민족시인문학상-(이상화 부문)-현대문학100주년건립위원회
한국전쟁문학상(소설 부문)-전쟁문학회

시집
《어머니의 물레》, 《사마리아 여인아》, 《둘이서 누운 자리가 따뜻하다》,
《다시 보는 하늘》, 《난 당신의 무엇이 될까》, 《하늘 땅 그리고 꽃》,
《잘려진 허리로 춤을》, 《물증》, 《룻의 고백》, 《거꾸로 온 나의 먼 길》,
《어쩌다 여기까지》, 《배꼽(공저)》

동시집
《엄마 생각》, 《꼬까옷》, 《아빠 생일》, 《난향 동산ㅍ, 《까꿍》, 《토닥토닥》

동화집
《해오라기》, 《별을 닦는 아이들》

소설
《무반주 첼로》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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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노을을 품고 흐르는 강> - 2018년 12월  더보기

설아(雪娥)는 청소하다 말고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오디오에서는 비감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목울대를 비틀어야지만 나올 법한 호소력 짙은 정감 어린 목소리는 거의 흐느끼는 듯 고백에 가까웠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설아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무료하리만큼 한가한 요즘, 왠지 마음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서러운지 모르겠다. 지난 세월, 험난한 세상을 남자 이상으로 헤쳐오지 않았던가. 어렵고 힘들었던 수많은 일이 과거라는 시간 속에 각기 자리를 잡았고 통곡하며 울어야 할 상황에서 입술을 깨물며 울지 않고 오히려 웃어버렸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교단에서 신념을 가지고 일할 만큼 일하고 이제 쉴 때가 되어 쉬는 것인데 이 사회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소외시킨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젊어서는 사는 일에 급급했던 나머지 눈물 흘릴 새도 없었는데…….’ 이런 생각이 미치면, 이제는 눈물쯤 짜면서 시간 좀 허비한들 어떠랴. 한가로이 울 수 있는 사람은 기실 행복할 터였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이제 남자 가수의 목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친구들에게서 외유내강, 오뚝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질곡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던가! “내 인생은 이제 온전한 나의 것!” 설아는 크게 외치며 앞 베란다에 소품인 양 놓여 있는 둥그런 탁자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저만치 창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앞산 칠보산을 바라보았다. 병풍이라도 쳐놓은 듯한 칠보산은 아직까지는 만추의 자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싱그럽다 못해 풍요롭다. 설아는 탁자 위에 있는 시작詩作 노트에다 우선 “내 거할 곳” 하고 느낌이 솟는 대로 제목을 붙였다. 내가 푸른 혈맥/ 그 맑은 강으로 흘렀을 때/ 내 숨소리는 모두 노래였지// 내 입술이 붉은 꽃잎이었을 때/ 내 목소리는 모두/ 황홀한 향기였지// 어느덧 강은 마르고/ 노랫소리 그쳐/ 추억도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지금// 부르는 님의 손짓 있으니/ 내 그분에게 넌지시 자랑할 만한/ 꽃 한 송이 들고// 사랑보다 미움이 앞섰던/ 소망보다 절망이 많았던/ 모든 잘못은 눈물과 함께 회개하고// 이제 슬픔도 아름답게 앓아야 할 세월에/ 나아갈 길 비출 등불에 기름을 붓고/ 님이 부르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하리. 설아는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가을에 떠날 거야. 왠지 가을이 좋아. 내가 한세상 마칠 때에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가을을 좋아했다. 자기가 죽을 때도 가을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변에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왜 벌써부터 죽는 타령이냐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어쨌든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에 오가는 구름이 좋았고 바람에 뒹구는 낙엽의 행로를 추적하기도 하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았다. 그 가을이 금년엔 유난히 길었다. (중략) 설아는 주방으로 가 찬물을 한 컵 가득 따라 마셨다. 타오르던 속이 이내 시원해졌다. 설아는 마치 물이 속 불을 진압하는 소방수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빈 컵을 내려놓는 순간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수화기 저쪽의 굵은 목소리는 꿈에도 못 잊을 큰아들 은학이였다. 은학은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장애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미의 마음은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은학은 비장애인들의 질시와 자존심 상하는 그 많은 고충을 이겨내고 이제는 어엿한 박사가 되었다. 천사 같은 며느리까지 짝지어 보냈으니 그보다 더 든든하고 안심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미의 마음은 자식에 한해서만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로 있는 은학은 아들딸 남매를 두었다. 전화는 특별휴가를 받아서 바로 귀국할 예정이니 한국에서 기쁘게 상봉하자는 내용이었다. 아들은 처와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목소리 또한 맑고 밝아 보였다. 설아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을 내색하면 누군가가 훔쳐 가버릴 것만 같아 조용히 마음 아래에 숨겨놓았다. 밖에 있는 남편에게만은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한편, 아버지의 도움으로 어엿한 부동산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보금자리는 빈손만 남기고 둥지를 떠나야 했다. 도대체 구제 방법이 없는 남편은 애증의 그림자로 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또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으로. 자식들이 성혼하여 제 갈 길을 가면서 다 떠나버린 마당에 남편이란 존재는 그가 자신의 곁에 있고, 건강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설아는 다시 오디오 테크에 CD를 올렸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였다. ‘무반주 첼로’는 17세기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바흐의 곡이다. 언제나 설아가 즐거울 때면 습관처럼 듣는 곡이었다. 전축 위엔 그 옛날 미지꼬 선생님이 주고 간 첼로를 안고 있는 구리인형이 놓여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이 얽혀서인지 설아는 악기 중에 첼로를 제일 좋아했다. 첼로의 음률은 차분하여 좋기도 하지만 특히 첼로의 음색은 사람의 심장 소리와도 흡사하여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땐 적격인 것이다. 무반주 첼로, 반주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본다. 갑자기 판소리를 부를 때 들어가는 추임새와 가장 간단한 북장단도 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서러움이 그녀의 가슴에 쌓인다. 반주 없는 인생. 차분한 첼로의 선율이 음폭을 달리하며 집 안을 가득 메워나간다. 그녀는 들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해보며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11월 중순의 창밖에선 바람이 이는 듯 나무의 잔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때마다 나뭇잎 몇 점이 켜켜이 묶은 고뇌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지듯 낙하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설아가 있는 베란다 창 쪽으로 날아오다가 일시에 방향을 바꿔 화단에 손님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햇살만큼은 투명한 것이 따스해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햇살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햇살 저쪽으로부터 누군가가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채 차분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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