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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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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역주 궁와집>

박규문

1670 ~ 174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궁와(窮窩), 자는 문서(文瑞)이다. 밀양 박씨 중시조인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16세손이며, 계양팔문장가의 한 사람인 박선(朴渲)의 큰아들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한 뒤 24년이 지난 1720년(숙종 46)에야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가 안장된 혜릉(惠陵)을 관리하는 종9품 참봉(參奉)이 되었으나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노론(老論)이 축출되면서 2년 만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이듬해(1723) 다시 증광문과(增廣文科) 을과(乙科) 7등으로 합격하여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와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였고, 이후 세자시강원 사서(世子侍講院司書)와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 등을 거친 뒤 외직(外職)으로 나가 황해도 장연현감(長連縣監)을 지냈다. 1725년(영조 원년)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과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정3품의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었고, 《경종실록(景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727년(영조 3)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있으면서 '관리 임명을 신중히 하고, 직간을 용납하며, 탐관오리를 파직하고, 궁가의 둔전의 폐단을 시정할 것' 등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듬해 세자시강원의 정4품 필선(弼善)이 되었으나 이 상소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장령으로 복직된 뒤에도 다시 풍양 조씨(豊壤趙氏)의 횡포를 배척할 것 등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파직되었다. 이에 유서에서 후손들에게 관직에 나아가지 말도록 경고하였다. 효행과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지키는 삶을 살았으며, 자신의 호를 딴 《궁와집(窮窩集)》을 남겼다. 남휘(南徽)·이장(李樟)과 더불어 계양삼호걸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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