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1724년 동(東)프로이센의 중심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1746년에 졸업하고 1755년 대학의 사강사(私講師)로 강단에 서서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형이상학과 논리학’ 강좌의 정교수가 되었다. 1781년에 대저 『순수 이성 비판』을 출간하고 이어서 1783년에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1785년에 『윤리 형이상학 정초』, 1788년에 『실천 이성 비판』, 1790년에 『판단력 비판』, 1793년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1795년에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 하나의 철학적 기획)』, 1797년에 『윤리 형이상학』(1편 「법 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원리」, 2편 「덕 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원리」)』등 역저를 잇따라 내놓았다. 그사이 그는 1786년과 1788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1804년 80세를 앞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직전 물에 탄 포도주를 조금 입에 댄 후, “좋다(Es ist gut)”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기념 동판에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이라는 그의 『실천 이성 비판』 결론 장의 한 구절을 새겨 넣고, 그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
칸트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인간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칸트는 우선 세 가지 물음, 첫째로 인간인 ‘나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둘째로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셋째로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를 던지고, 이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를,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인간이기 위한 최선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물음들은 결국 진리(眞), 선(善), 미(美), 성(聖)과 인류 평화(和)의 가능 원리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서, 칸트는 이 다섯 가지 주제를 ‘이성 비판’의 방법을 통해 탐구하고 그 결실을 그의 57년간(1747~1803)의 학문 활동에 걸쳐 70편의 논저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의 존재 형이상학(존재론・인식론), 도덕 형이상학(윤리학), 미학(예술 철학), 종교 철학, 정치・법철학의 골격을 이룬다. ‘이성 비판’이라는 칸트의 철학 방법은 계몽주의 시대정신의 반영인데, 그 결실로 얻어진 칸트의 ‘비판 철학’은 그 자체로 계몽 철학의 전형이다.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뉴턴이 과학에서, 로크–루소–몽테스키외가 정치 사회 이론에서 계몽 정신을 구현했다면, 칸트는 철학의 본령인 형이상학에서 그 학문성을 놓고 맞대결한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진영(이성주의)과 로크–버클리–흄의 진영(경험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진정한’ 계몽 정신을 시현했다. 게다가 그의 철학적 사유는 저들 자연 과학적, 정치 이론적, 형이상학적 사상들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의 문물 제도의 변화, 국가 형태의 변천과 세계 내에서 국가들의 역학적 관계까지도 항상 그 시야에 두고 있었으니, 칸트는 참으로 ‘세계 시민적’ 계몽주의자였다. 이처럼 칸트의 철학은 계몽 철학의 정점에 서 있다. 그러나 정점은 오르막의 끝이자 내리막의 시작이다. 계몽 철학으로서 칸트의 철학은 모든 참된 발언의 본부를 인간 이성에 두지만, 그 이성은 자기비판을 통하여 한계를 자각한 이성이다.
칸트에서 철학이란 “개념들에 의한 이성 인식들의 체계”이고, 이때 이성 인식이란 원리적 인식(cognitio ex principiis), 즉 순수한 선험적 인식을 말한다. 그리고 칸트의 비판 철학은 바로 이성 비판을 통하여 순수한 선험적 이성 원리들을 발견하고, 그 원리들의 사용 범위를 규정하는 것을 과제로 갖는데, 여기서 ‘이성’이란 다름 아니라 인간의 ‘마음’ 또는 ‘나’의 다른 지칭이다. 흄의 『인성론』이나 바움가르텐의 『형이상학』의 「경험 심리학」에서 볼 수 있듯이, 당대의 능력 심리학은 마음의 능력을 ‘지(知 ? Erkennen/Denken, 인식 능력), 정(情 ? Fuhlen, 쾌?불쾌의 감정), 의(意 ? Wollen, 욕구 능력)’ 등과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칸트도 이를 수용하여 이 능력들이 지향하는 최고 가치들, 즉 진?미?선의 선험적 원리 구명을 철학의 제1차 작업 과제로 삼았고, 그 성과가 그의 이른바 3대 비판서, 곧 『순수 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실천 이성 비판』으로 나왔다. 칸트 독해의 정상에는 당연히 이 3대 비판서가 위치할 것이나, 무릇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중턱을 넘어서야 하니 1단계 독서로는 『형이상학 서설』과 『윤리 형이상학 정초』가 제격이다. 『형이상학 서설』은 『순수 이성 비판』의 방대함과 난해함을 덜기 위해 칸트 자신이 독자 친화적으로 좀 더 짧고 쉽게 쓴 그의 이론 철학 교본이라 할 수 있고, 『윤리 형이상학 정초』는 주제의 면에서는 『실천 이성 비판』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서술이 평범한 인간 인식과 대중적 윤리 지혜로부터 분석적으로 진전해 가고 있어서 일반 독자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한 칸트 도덕 철학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칸트 원전 독서에 앞서 칸트 철학 전모를 헤아리고자 하는 독자나 칸트 원전 독서를 어느 정도 하고서 칸트 철학 대강을 정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칸트 이성 철학 9서 5제』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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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독해의 2단계는 그의 주저, 곧 3대 비판서의 독파이다. 칸트 철학의 주요 방법이 ‘이성 비판’이라고 할 때, ‘이성’은 무엇을 지칭하는가? 철학은 자연 언어로 사유를 전개하거니와, 대개의 자연 언어는 의미 형성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의미가 다양하다. 그리고 여러 시대 여러 곳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함유함으로써 생긴 그 의미의 다양성은 한편으로는 풍부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매모호성이다. ‘이성’ 역시 그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칸트 또한 그렇게 사용한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규정을 받아들이고 나면, 인간의 마음 능력은 일단 ‘이성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넓게는 인간의 마음 능력 전체를 ‘이성’이라 통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성을 이론적으로 또는 실천적으로 사용되는 양태에 따라 ‘이론적(사변적) 이성’ 혹은 ‘실천적 이성’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이때 이론적 이성은 ‘지성’, ‘실천적 이성’은 단적으로 ‘이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 지성과 이성 사이에 쾌/불쾌의 감정에 대응하는 최고 인식 능력으로 ‘판단력’을 두어 마음의 능력을 세분하기도 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는 마음 능력을 이렇게 삼분하여 그 각각의 선험적 원리를 고찰하여 얻은 것이다. 인간 인식 능력의 선험적 원리인 합법칙성은 존재의 세계 곧 존재자들에게 ‘존재’를 규정하는 최고 원리이다. 순수 직관의 원리인 공간?시간 표상과 순수 사고의 원리인 지성의 근간 개념(범주)들이 그것인바, 이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 칸트의 제1비판서 『순수 이성 비판』이다. 이 작업의 결과로 이른바 칸트의 ‘초월 철학’을 통해 자연 과학적 대상으로서의 존재자들은 그 존재 의미를 부여받았으나, 재래의 영혼?우주?신에 대한 ‘형이상학’은 그 학문성이 거부되었다. 그러므로 『순수 이성 비판』은 자연 과학적 지식의 철학적 정초이자, 사변적 형이상학의 비판적 퇴출을 겨냥하고 있다. 이로써 진리 영역이 한계 지어진다. 인간의 책무적 욕구 능력(의지)의 선험적 원리는 당위 세계 곧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최고 원리이다. 자연 세계와 윤리 세계가 구분된다면 그것은 그 세계에 타당한 법칙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가 자연법칙의 유효 영역이라면 윤리 세계는 윤리/도덕 법칙이 유효한 영역이다. 그런데 왕왕 인과 법칙성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라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라고 하는) 윤리적 명령들은 인간에게 그렇게 행위할 능력, 곧 ‘자유’가 있음을 전제한다. 이에 칸트의 제2비판서 『실천 이성 비판』은 윤리란 자연적 욕구(경향성)를 이겨 내는 자율의 힘에 의거하며, 그 자율의 힘에 의해 인간이 한낱 자연물이 아니라 ‘인격’임을 해명한다. ‘합목적성’ 곧 ‘오로지 목적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물들의 성질에 그 사물이 합치함’에서만 쾌의 감정이 일어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불쾌의 감정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쾌/불쾌의 감정의 선험적 원리인 ‘합목적성’은, 이론 이성이나 실천 이성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이성 기능인 판단력의 작동 원리가 된다. 한 송이 장미꽃을 보면서 우리는 “이 장미꽃이 빨갛다”는 인식 판단 외에도 “이 장미꽃은 아름답다”라는 미감적 판단을 내리는데,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합목적성’이라는 자기 자율적 원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이런 원리는 자연적인 것이든 예술적인 것이든 어떤 기예 작품의 판정 원리로 작동한다. 칸트의 제3비판서 『판단력 비판』은 이러한 미적 세계와 합목적적 세계를 독자에게 열어 보여 주는 동시에, 칸트에 뒤따르는 한 세대간 ‘독일 이상주의’의 치열한 사유 전개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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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의 정신은 계몽주의와 휴머니즘이다. 청장년기에 정교한 사유 작업을 편 칸트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강건한 그러나 더욱 따뜻해진 시선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보낸다. 그것을 독자는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세 저술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영원한 평화』, 『윤리 형이상학』에서 볼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의무들을 신의 지시 명령(계명)들로 인식함”에 그 참뜻이 있고, 그 참뜻은 지상에 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서 실현된다. 칸트는 그의 철학적 종교론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통해 진정한 성스러움은 인간이 선한 원리에 따라 ‘윤리적 공동체’ 내지 ‘덕의 나라’를 지상에서 이룩하는 데 있음을 역설한다. 이어서 칸트가 내놓은 철학적 이념은 인류 세계의 ‘영원한 평화’이다. 그것은 평화 안에서만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곧 ‘인권’이 지속적으로 펼쳐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칸트에서 ‘인권’이란 “인간들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것” 내지 “세계 안에서의 가장 신성한 것”이자 “신이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다. “우리 인격 안의 인격성의 권리들 및 인간들의 권리 외에 세상에서 신성한 것은 없다. 신성성은 우리가 인간들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그러한 사용의 금지는 자유와 인격성 안에 있다.” 이러한 인권의 보장이 법치 국가에서만,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보편적인 국가 연합’을 이룸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음을 칸트는 『영원한 평화』와 『윤리 형이상학』의 1편 「법 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원리」를 통해 역설한다. 타인과 공존하는 ‘시민적 상태’에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립성이다. 그래서 “행위가 또는 그 행위의 준칙에 따른 각자의 의사의 자유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어느 누구의 자유와도 공존할 수 있는 각 행위만이 옳다”는 것이 칸트에서 법의 ‘보편적 원리’이다. 이 원리는 한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서도 타당하다. 칸트의 법사상은, 인간 각자는 자립성을 갖되 더불어 삶에서는 화합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부동이화(不同而和)’의 원리 위에 있다 하겠다. 칸트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성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다. 탈주체를 지향하고 감성에 경도하는 현대에서 주체주의자이자 이성주의자인 칸트를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과 어긋남이 바로 철학함의 시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대세가 ‘이성적’일 때 철학자는 감성의 의의를 역설하고, 대중이 ‘감성적’이면 철학자는 이성의 의미를 밝혀 인간 문화의 균형자 역할을 한다. 지금 ‘칸트 읽기’는 다름 아닌 진정으로 ‘철학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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