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미래의 밤"
이 픽션은(픽셔널fictional한 것은 리얼한 것의 반대편에 있다. 실제 무한이라는 상징을 만든 이는 존 월리스이다.) 17세기의 수학자이자 성직자인 '존 홀리스'라는 인물의 일화로 문을 연다. 밤하늘의 별이 무한하다면, 밤하늘은 어떻게 저토록 어두울 수 있지. 존 홀리스는 "어이없게도 자신이 던진 농담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11쪽) 밤하늘에게서 도망치려다 무한∞을 발견한다.
질문은 2019년 서울의 밤하늘로 건너온다. 무한에 1을 더하면 무한은 무엇이 되고, 다시 그 무한에서 1을 빼면 1이 빠진 무한은 무엇이 되지. 선우정의 질문 이후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019년 겨울, 윤호연은 자신의 아내 선우정의 남자친구라는 한 사내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1999년의 밤하늘 아래에 있는 도현도. 지금 도현도, 자신을 만나지 못하면 당신이 죽는다는 도현도의 말에 윤호연은 호기심을 품은 채 도현도를 만나러 간다.
정교한 모순이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윤은 교회를 다니지만 신을 믿지 않고 (24쪽) 해파리는 죽기 직전에 다시 어린 개체가 되어 생멸을 반복하며 아이덴티티를 이어나가며, (100쪽) 진정한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137쪽)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이어져 있다는 것", "고고한 개인이나 단독자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 자체가 불가능"(236쪽) 하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소설 속에 주기적으로 흐르는 음악은 바흐의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규칙적으로 중첩되는 구조적인 음악처럼, 밤하늘 위의 두 개의 원은 교차하며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장욱의 시집 제목 중) 감각의 연주를 이어나간다. "뭐 그냥 소설일 뿐이지"(249쪽)라고 소설 속 인물은 이야기하지만, 이장욱이 설계한 이 '거의 밤 같은 무엇'을 읽는 지적인 체험은 확실히 희귀하고 즐겁다. '미래 비슷한 무엇'을 짐작하는 시간,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도 별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무한히 빛을 내고 있으니까.
- 소설 MD 김효선 (2021.06.08)